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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문 없는 방: 문 하나뿐인 방, 존재하지 않는 공간, 다시 열리지 않는 문
    서스펜스 스릴러 소설 2026. 3. 12. 13:37

    처키와 닮은 인형

    문 하나뿐인 방

    서울 외곽에 있는 오래된 경찰서 유치장은 밤이 깊어질수록 이상할 정도로 조용해졌다. 낮에는 취객들과 사소한 시비로 잡혀온 사람들 때문에 시끄럽지만, 새벽이 가까워질수록 복도에는 발걸음 소리 하나 울리지 않았다.

    형사 한지훈은 그날 밤 유치장 앞 복도를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형광등이 희미하게 깜빡였고, 오래된 콘크리트 벽에서는 축축한 냄새가 올라왔다. 그는 당직 경찰에게서 받은 보고서를 다시 떠올리고 있었다.

    “형사님, 조금 이상한 사람이 잡혀 왔습니다.”

    당직 경찰의 말은 평범했지만, 뒤에 붙은 설명이 묘하게 신경을 건드렸다.

    남자는 서울 외곽의 한 폐건물 지하에서 발견되었다. 그 건물은 몇 년 전부터 완전히 비어 있었고, 노숙자조차 들어오지 않는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남자는 그 지하에서 혼자 걸어 나왔다고 했다.

    지훈은 철창 앞에 멈췄다.

    유치장 안에는 한 남자가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나이는 서른 초반쯤 되어 보였다. 얼굴에는 수염이 듬성듬성 나 있었고, 옷은 먼지와 얼룩으로 더러워져 있었다.

    남자의 눈은 심하게 피곤해 보였다. 마치 며칠 동안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사람처럼.

    지훈이 철창 가까이 다가갔다.

    “이름이 뭐지?”

    남자는 잠시 지훈을 바라봤다.

    눈동자가 약간 흔들리고 있었다.

    “기억이… 안 납니다.”

    지훈은 익숙한 반응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술 취한 사람이나 충격을 받은 사람들은 종종 기억이 흐릿해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몇 분 지나지 않아 다시 떠올린다.

    “그럼 어디서 나왔어?”

    지훈이 물었다.

    남자는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방이었습니다.”

    “무슨 방?”

    남자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창문 없는 방입니다.”

    지훈은 조금 피곤한 표정을 지었다.

    “지하 방이겠지.”

    남자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잠깐의 침묵.

    “문은 하나뿐이었습니다.”

    지훈은 팔짱을 꼈다.

    “그게 뭐가 이상하지?”

    남자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 문을 열고 나왔습니다.”

    “그래서?”

    남자는 지훈을 똑바로 바라봤다.

    “밖이 건물이었습니다.”

    지훈의 눈이 조금 좁아졌다.

    “무슨 말이야?”

    남자는 조용히 말했다.

    “그 방에는… 밖으로 나가는 길이 없었습니다.”

    복도는 잠시 정적에 잠겼다.

     

    존재하지 않는 공간

    지훈은 결국 남자를 조사실로 데려왔다.

    작은 조사실 안에는 책상 하나와 의자 두 개, 그리고 천장에 달린 형광등 하나뿐이었다. 형광등 불빛이 희미하게 깜빡이며 방 안을 밝히고 있었다.

    남자는 의자에 앉아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지훈은 녹음기를 켰다.

    “다시 묻겠다. 이름이 기억 안 난다고 했지?”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갑도 없고 휴대폰도 없고.”

    “네.”

    지훈은 펜을 돌리며 물었다.

    “처음 기억나는 건 뭐지?”

    남자는 잠시 눈을 감았다.

    “눈을 떴을 때… 그 방이었습니다.”

    “얼마나 있었어?”

    남자는 잠시 생각했다.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대충이라도.”

    남자는 천천히 말했다.

    “며칠… 아니면 더 오래였을지도 모릅니다.”

    지훈은 메모를 했다.

    “방 구조는?”

    남자는 손으로 네모 모양을 그렸다.

    “작았습니다.”

    “얼마나?”

    “한… 세 걸음 정도.”

    지훈은 눈썹을 살짝 올렸다.

    “창문은 없고?”

    “네.”

    “문은 하나.”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불은?”

    “천장에 하나 있었습니다.”

    “항상 켜져 있었나?”

    “네.”

    “먹을 건?”

    남자는 잠시 멈췄다.

    “있었습니다.”

    지훈이 고개를 들었다.

    “누가 줬지?”

    남자는 조용히 말했다.

    “모릅니다.”

    지훈의 펜이 멈췄다.

    “문 열리는 소리는?”

    “없었습니다.”

    “그럼 음식은 어떻게 들어왔지?”

    남자는 낮게 말했다.

    “그게… 이상했습니다.”

    잠시 침묵.

    “제가 잠들었다가 일어나면… 항상 바닥에 음식이 있었습니다.”

    지훈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납치 사건이라면 납치범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이 남자의 이야기에는 사람이 등장하지 않았다.

    지훈은 다시 물었다.

    “그 방에서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건?”

    남자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문을 열었습니다.”

    “잠겨 있지 않았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남자의 눈이 조금 흔들렸다.

    “밖이… 복도였습니다.”

    “어떤 복도?”

    “지하 복도였습니다.”

    지훈은 잠시 생각했다.

    “그래서 걸어 나왔나?”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게 끝인가?”

    남자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아닙니다.”

    지훈이 고개를 들었다.

    “뭐가 더 있었지?”

    남자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뒤를 돌아봤습니다.”

    “왜?”

    “그 방을 다시 보려고.”

    지훈이 물었다.

    “그래서?”

    남자의 입술이 천천히 움직였다.

    “문이… 없었습니다.”

    조사실 안 공기가 순간 무겁게 가라앉았다.

    지훈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의자를 밀며 일어났다.

    “그 건물 위치 알려줘.”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왜요?”

    지훈은 짧게 말했다.

    “확인해 보려고.”

     

    다시 열리지 않는 문

    지훈은 남자가 말한 폐건물로 향했다.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오래된 상가 건물이었다. 대부분의 상점은 문을 닫았고 건물 입구에는 녹슨 철문이 달려 있었다.

    비어 있는 건물 특유의 먼지 냄새가 공기 속에 퍼져 있었다.

    지훈은 경찰 두 명과 함께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 복도는 어둡고 축축했다. 손전등 불빛이 콘크리트 벽을 스치며 길게 흔들렸다.

    “여기 맞아?”

    지훈이 물었다.

    남자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복도였습니다.”

    지훈은 복도를 천천히 걸어갔다.

    복도 끝까지 가보았지만

    그곳에는 문이 없었다.

    벽뿐이었다.

    지훈은 손전등을 벽에 비추며 손으로 두드려 보았다.

    속이 빈 소리도 나지 않았다.

    완전히 막힌 콘크리트 벽이었다.

    지훈은 남자를 돌아봤다.

    “문이 있었다고?”

    남자의 얼굴이 점점 창백해졌다.

    “분명히… 여기였습니다.”

    지훈은 다시 바닥을 비춰 보았다.

    그때 먼지 위에 희미한 사각형 자국이 보였다.

    마치 오랫동안 문이 있었던 자리처럼.

    지훈의 심장이 조금 빨라졌다.

    그 순간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낯선 번호였다.

    전화를 받자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형사님.”

    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남자는 조용히 말했다.

    “그 방을 찾으셨군요.”

    지훈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누구지?”

    잠시 침묵.

    그리고 남자가 말했다.

    “그 방은… 실험실입니다.”

    지훈의 눈이 좁아졌다.

    “무슨 실험?”

    남자의 대답은 짧았다.

    “사람이 얼마나 오래 고립될 수 있는지.”

    전화가 끊겼다.

    지훈은 다시 벽을 바라봤다.

    그 순간

    복도 어딘가에서

    철컥.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지훈이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그곳에도

    문은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지훈은 깨달았다.

    어쩌면

    그 남자가 나온 창문 없는 방은

    아직도

    이 건물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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