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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록되지 않은 밤: 움직이는 도시, 사라진 시간, 아무도 남기지 않는
    서스펜스 스릴러 소설 2026. 3. 19. 12:55

    여자와 남자 좀비들

    기록으로 움직이는 도시

    도시는 기록 위에서 살아간다.

    사람들은 대부분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지만, 하루 동안 남기는 기록의 양은 상상 이상이다. 아침에 집을 나서며 아파트 출입카드를 찍는 순간부터 기록이 시작된다. 지하철 게이트를 통과하면 교통카드 기록이 남고, 카페에서 커피를 사면 카드 결제 내역이 남는다. 회사 건물에 들어갈 때도 출입 기록이 남고, 점심을 먹을 때도 결제 기록이 또 하나 쌓인다.

    휴대폰은 더 많은 흔적을 남긴다.

    통화 기록, 메시지 기록, 인터넷 접속 기록, 위치 정보. 사람의 이동과 행동은 대부분 데이터로 저장된다. 누군가가 하루 동안 어디를 다녔고 무엇을 했는지 추적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그래서 형사 윤지훈은 늘 이런 말을 했다.

    “요즘 시대에는 완전히 흔적 없이 사라지는 사람이 거의 없어.”

    지훈은 강력팀에서 12년 동안 일한 형사였다. 그가 해결했던 사건들의 대부분은 결국 기록에서 시작됐다.

    범인은 거짓말을 한다.
    목격자는 기억을 착각한다.
    하지만 기록은 대부분 사실을 말한다.

    그래서 지훈의 수사 방식은 단순했다.

    사람의 말을 믿기 전에 기록을 먼저 확인하는 것.

    하지만 이번 사건은 그가 알고 있던 모든 방식이 통하지 않는 사건이었다.

    사건은 단순한 실종 신고로 시작됐다.

    실종자의 이름은 정민수. 서른한 살, IT 회사에서 일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범죄 기록도 없었고 특별한 문제도 없었다.

    가족들도 그를 이렇게 설명했다.

    “성실하고 조용한 사람이에요.”

    실종 당일도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수는 회사에서 퇴근한 뒤 집 근처 식당에서 혼자 저녁을 먹었다. 그 장면은 식당 CCTV에 분명하게 찍혀 있었다.

    그리고 밤 10시 52분.

    그는 편의점에서 맥주 두 캔과 과자를 샀다. 카드 결제 기록도 남아 있었고, 편의점 CCTV에도 모습이 찍혀 있었다.

    그 다음 장면도 있었다.

    편의점 문을 나와 골목 쪽으로 걸어가는 모습이었다.

    그것이 마지막 기록이었다.

    지훈은 처음 사건 파일을 보면서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실종 사건의 대부분은 며칠 안에 해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밤 11시 23분.

    민수의 휴대폰이 마지막 신호를 남기고 꺼졌다.

    위치는 편의점에서 약 100미터 떨어진 골목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아무 기록도 남지 않았다.

     

    사라진 시간

    지훈은 사건을 맡은 다음 날 바로 현장을 찾았다.

    민수가 마지막으로 들어간 골목은 생각보다 좁았다. 오래된 건물들이 양쪽에 붙어 있었고 가로등은 몇 개 없었다. 낮에는 평범한 골목이었지만 밤이 되면 꽤 어두워질 것 같은 분위기였다.

    지훈은 골목 입구에 서서 주변을 천천히 둘러봤다.

    “여기서부터 기록이 끊긴 거야.”

    옆에 있던 후배 형사가 말했다.

    “CCTV도 없고 카드 사용 기록도 없습니다.”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서울에서 CCTV가 없는 곳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하지만 오래된 주택가 골목에는 아직 사각지대가 남아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보통 사람이 골목을 지나가면 몇 분 안에 다시 큰 길로 나오게 된다. 그러면 다른 CCTV에 다시 찍히게 된다.

    하지만 민수는 어느 CCTV에도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마치 그 골목에서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지훈은 골목을 끝까지 걸어갔다.

    골목은 막다른 길이었다. 끝에는 오래된 담벼락이 있었다.

    후배 형사가 말했다.

    “담 넘었을 수도 있겠네요.”

    지훈은 벽을 올려다봤다.

    성인 키보다 훨씬 높았다. 그리고 벽 위에는 깨진 유리 조각들이 붙어 있었다. 쉽게 넘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넘었다면 흔적이 있어야 해.”

    하지만 그런 흔적은 없었다.

    지훈은 다시 골목 입구로 돌아왔다.

    그리고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 골목은 낮에는 평범하다. 하지만 밤이 되면 완전히 다른 공간이 된다.

    CCTV가 없고 사람도 거의 지나가지 않는다.

    그 말은 곧 이런 뜻이었다.

    누군가 이곳에서 무언가를 해도 기록이 남지 않는다.

    지훈은 사건 파일을 다시 검토했다.

    민수의 통화 기록, 메시지, 인터넷 기록, 회사 관계.

    하지만 특별한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사라질 이유가 없는 사람이 사라졌어.”

    후배 형사가 물었다.

    “그럼 납치일까요?”

    지훈은 잠시 생각했다.

    납치라면 차량 이동 기록이나 목격자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런 것도 없었다.

    그렇다면 남는 가능성은 하나였다.

    민수는 그 골목에서 누군가를 만났다.

    그리고 그 만남은 기록되지 않았다.

    지훈은 그 순간 처음으로 깨달았다.

    이 사건의 핵심은 사라진 사람이 아니라

    사라진 시간이라는 것을.

    밤 11시 23분부터 새벽 3시까지.

    그 몇 시간 동안 민수의 존재는 완전히 지워져 있었다.

    마치 그 시간 자체가 기록에서 삭제된 것처럼.

     

    아무도 남기지 않는 기록

    수사는 몇 주 동안 계속됐다.

    하지만 사건은 점점 미궁으로 빠졌다.

    민수의 휴대폰은 결국 강가에서 발견됐다. 누군가 던진 것처럼 보였지만 지문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몸은 발견되지 않았다.

    용의자도 없었다.

    사건은 점점 미제 사건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었다.

    어느 날 밤 지훈은 혼자 다시 그 골목을 찾았다.

    이번에는 일부러 민수가 사라진 시간에 맞춰 왔다.

    밤 11시.

    도시는 여전히 바빴지만 이 골목은 놀라울 정도로 조용했다. 가로등 불빛은 희미했고 바람 소리만 들렸다.

    지훈은 골목 안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낮에 보던 풍경과는 완전히 달랐다.

    어둠이 깊어지자 골목은 마치 도시에서 떨어져 나온 작은 공간처럼 느껴졌다.

    그때였다.

    멀리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지훈은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잠시 후 다른 골목에서 누군가 지나가는 그림자가 보였다.

    그는 그 순간 깨달았다.

    이곳에서는 사람을 봐도 기록이 남지 않는다.

    CCTV도 없고
    카드 결제도 없고
    사람도 서로 얼굴을 기억하지 않는다.

    이곳에서 일어난 일은 대부분 그냥 지나가 버린다.

    지훈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래서 선택한 거군.”

    누군가는 알고 있었다.

    이 골목이 어떤 시간에는 기록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장소가 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 사람은 바로 그 시간을 이용했다.

    민수는 그날 밤 우연히 그곳을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혹은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들어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는 그 밤에 누군가가 기록되지 않기를 바랐던 일을 보게 됐다.

    그래서 사라졌다.

    지훈은 골목 끝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도시는 수많은 카메라와 데이터로 가득 차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에는 여전히

    기록되지 않는 공간이 존재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그곳에서만 움직인다.

    아무 기록도 남지 않는 시간.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순간.

    사람들은 그것을 모른다.

    하지만 형사들은 안다.

    세상에는 분명

    기록되지 않은 밤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조용히 반복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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