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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 번째 범인: 이미 끝난 사건, 보이지 않는 사람의 흔적, 칼을 들지 않은 범인
    서스펜스 스릴러 소설 2026. 3. 20. 16:55

    전기톱을 들고있는 남자

     

    이미 끝난 사건처럼 보였다

    비가 오래 내리던 밤이었다. 늦은 시간의 도시는 대부분 잠들어 있었지만, 골목 하나만은 유난히 밝았다. 경찰차의 파란 경광등이 젖은 아스팔트 위에 번져 있었고, 노란 통제선이 좁은 골목을 가로막고 있었다.

    사건은 단순해 보였다.

    피해자는 서른세 살의 직장인 남성, 이름은 이정우. 특별한 범죄 기록도 없고 평범하게 회사에 다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범인도 이미 잡혀 있었다.

    김태식. 피해자의 직장 동료였다.

    그는 체포될 때 이미 술에 취한 상태였고, 경찰서에서 바로 범행을 인정했다. 피해자와 술자리에서 다툼이 있었고, 감정이 격해져 골목에서 말다툼을 하다가 흉기를 휘둘렀다고 진술했다.

    CCTV도 있었다.
    지문도 있었다.
    흉기도 현장에서 발견됐다.

    사건은 더 조사할 것도 없는 단순한 분노 범죄처럼 보였다.

    대부분의 형사라면 이 사건을 이미 끝난 사건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형사 강현우는 현장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늘 사건이 끝난 뒤에도 잠시 현장에 남아 있는 습관이 있었다. 사람들이 떠난 뒤의 공간은 종종 마지막 이야기를 남기기 때문이다.

    후배 형사가 말했다.

    “선배님, 이제 정리 끝났습니다.”

    현우는 대답하지 않고 골목을 천천히 걸었다.

    좁은 골목은 막다른 길이었다. 양쪽에는 오래된 건물 벽이 높게 서 있었고, 가로등 하나가 희미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그는 피해자가 쓰러져 있던 자리를 바라봤다.

    이미 시신은 옮겨졌고 바닥도 정리됐지만, 형사는 흔적을 보는 눈이 다르다. 아주 미묘한 차이도 놓치지 않는다.

    현우는 잠시 서 있다가 중얼거렸다.

    “이상하네.”

    후배가 물었다.

    “뭐가요?”

    “너라면 여기서 싸울 것 같아?”

    후배 형사는 골목을 둘러봤다.

    “술 취하면 아무 데서나 싸우죠 뭐.”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현우의 머릿속에서는 작은 의문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 골목은 지나가는 길이 아니었다. 막다른 길이었다.

    즉, 누군가는 일부러 이곳으로 들어와야 했다.

    그리고 현우는 이런 생각을 했다.

    사람이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가는 이유는 보통 두 가지다.

    도망치기 위해서이거나,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 사건은 도망치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들어왔을 가능성이 더 컸다.

    현우는 조용히 골목 입구를 바라봤다.

    그리고 낮게 말했다.

    “이 사건…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을지도 몰라.”

     

    보이지 않는 사람의 흔적

    사건은 빠르게 정리되는 분위기였다.

    김태식은 범행을 인정했고, 검찰로 넘기는 절차도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언론에서도 짧게 보도됐다.

    “술자리 다툼 끝에 동료 살해.”

    그 정도였다.

    하지만 강현우는 사건 파일을 덮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경찰서 작은 회의실에서 CCTV 영상을 반복해서 보고 있었다.

    영상 속에서 피해자와 김태식은 골목으로 들어왔다. 서로 언성을 높였고, 잠시 몸싸움이 있었다.

    그리고 몇 초 뒤 범행이 벌어졌다.

    영상은 분명했다.

    하지만 현우는 화면을 멈췄다.

    골목 입구였다.

    화면 가장자리에서 짧게 스쳐 지나가는 그림자가 보였다.

    처음 보면 그냥 지나치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현우는 다시 영상을 돌렸다.

    그리고 확대했다.

    흐릿했지만 사람의 형체였다.

    후배 형사가 말했다.

    “그냥 지나가는 사람 같은데요?”

    현우는 고개를 저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야.”

    그는 시간을 더 앞으로 돌렸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 있었다.

    그 그림자는 골목으로 들어간 뒤 다시 나오지 않았다.

    후배가 말했다.

    “벽 넘어갔을 수도 있죠.”

    현우는 골목 사진을 보여줬다.

    양쪽 벽은 성인 키의 두 배 가까이 되는 높이였다. 쉽게 넘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그럼 숨은 거죠?”

    현우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아니.”

    “그 사람은 여기서 보고 있었던 거야.”

    후배는 눈을 크게 떴다.

    “설마… 공범이요?”

    현우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부정하지도 않았다.

    대신 사건 기록을 펼쳤다.

    피해자의 통화 기록, 메시지, 회사 관계도.

    그리고 그중에서 하나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박준호.

    피해자의 회사 팀장이었다.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사건 당일 밤 피해자와 마지막으로 통화한 사람이 바로 박준호였다.

    시간은 사건이 일어나기 불과 5분 전이었다.

    하지만 조사 기록에서 그의 이름은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단순 참고인 조사 한 번.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날은 집에 있었습니다.”

    현우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사건에는 항상 두 종류의 사람이 있어.”

    후배가 물었다.

    “어떤 사람이요?”

    현우는 말했다.

    “첫 번째 범인.”

    그리고 잠시 후 덧붙였다.

    “그리고 두 번째 범인.”

     

    칼을 들지 않은 범인

    박준호는 처음에는 침착했다.

    경찰서 조사실에서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피해자와 통화한 건 맞습니다. 업무 이야기였습니다.”

    현우가 물었다.

    “어떤 업무였죠?”

    “프로젝트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왜 사건 직전까지 통화했죠?”

    박준호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건… 기억이 잘 안 납니다.”

    하지만 휴대폰 위치 기록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의 휴대폰 신호는 사건이 발생한 골목 근처에서 마지막으로 잡혔다.

    현우는 CCTV 영상을 보여줬다.

    “이 사람… 당신 맞죠?”

    영상 속 흐릿한 그림자.

    박준호의 얼굴이 굳었다.

    긴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결국 그는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왜 거기 있었죠?”

    그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진실이 드러났다.

    피해자 이정우는 회사 내부 비리를 알고 있었다.

    회사의 예산 일부가 불법적으로 빼돌려지고 있었고, 그 사실을 가장 먼저 알게 된 사람이 박준호였다.

    그는 그 일을 주도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피해자가 그 사실을 외부에 알리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그를 골목으로 불러냈다.

    대화를 통해 설득하려 했다.

    혹은 협박하려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 김태식이 나타났다.

    김태식은 피해자와 개인적인 갈등이 있었고, 술에 취해 있었다.

    언쟁은 빠르게 커졌다.

    그리고 결국 칼이 내려갔다.

    그 순간 박준호는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그는 말리지 않았다.

    경찰도 부르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뒤돌아 골목을 떠났다.

    왜냐하면 그 죽음은 그에게 불리하지 않은 결과였기 때문이다.

    현우는 조사실에서 말했다.

    “당신은 칼을 들지 않았습니다.”

    박준호는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당신은 그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현우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그래서 당신이 두 번째 범인입니다.”

    세상에는 이런 사건이 생각보다 많다.

    칼을 쥔 사람은 한 명뿐이다.

    하지만 그 칼이 내려가는 순간을 지켜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이 또 있다.

    어떤 사건에서는
    그 두 번째 사람이 더 위험하다.

    왜냐하면 그는 직접 손을 더럽히지 않기 때문이다.

    비는 다시 내리고 있었다.

    경찰서를 나서며 현우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사건은 항상 두 번 일어난다.”

    한 번은 칼이 내려올 때.

    그리고 또 한 번은

    누군가가
    그 칼을 막지 않기로 결정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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