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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12분: 기록에서 사라진 시간, 블랙박스가 멈춘 순간, 반복되는 사라진 시간서스펜스 스릴러 소설 2026. 4. 11. 22:41
기록에서 사라진 시간
비가 조용히 내리던 늦은 밤이었다. 형사 이정훈은 경찰서 야간 근무실에서 오래된 사건 기록을 정리하고 있었다. 창문 밖에서는 가로등 불빛이 빗물에 반사되어 희미하게 흔들리고 있었고, 사무실 안은 형광등 소리만 조용히 울리고 있었다.
야간 근무는 언제나 비슷했다. 평소에는 조용하다가도 어느 순간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 갑자기 터졌다. 정훈은 따뜻하게 식어버린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무전기가 갑자기 잡음을 내며 울렸다.
“서부교차로 교통사고 발생. 차량 단독 충돌. 운전자 의식은 있으나 혼란 상태.”
정훈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교통사고라면 보통 교통과에서 처리하지만, 무전 내용이 조금 이상했다. 신고자는 운전자가 사고 직후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다고 했다.
“12분이 사라졌다.”
그 말이 이상하게 귀에 남았다.
정훈은 우산을 챙기고 경찰차로 향했다. 비가 내리는 밤의 도로는 유난히 텅 비어 있었다. 차를 몰고 현장으로 향하는 동안 정훈의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음주 운전일까.
졸음 운전일까.
아니면 단순한 충격 때문에 기억이 흐려진 것일까.
하지만 형사로 오래 일하다 보면 이상한 직감이라는 것이 생긴다. 정훈은 이유 없이 이 사건이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서부교차로에 도착했을 때 파란 경찰차 불빛이 젖은 도로 위에서 번쩍이고 있었다. 검은 세단 한 대가 가로등을 들이받은 채 멈춰 있었다. 차량 앞부분은 심하게 찌그러져 있었지만 충돌 속도가 아주 빠르지는 않았던 것 같았다.
구급차 옆에는 한 남자가 담요를 두른 채 앉아 있었다.
서른 후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였다. 얼굴에는 작은 상처가 있었고 눈동자는 초점을 잃은 듯 흔들리고 있었다.
정훈이 다가갔다.
“괜찮습니까?”
남자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저는… 운전하고 있었습니다.”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네. 알고 있습니다.”
정훈은 차분하게 말했다.
남자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신호등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몇 시였죠?”
“10시… 14분이었습니다.”
정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의 눈이 흔들렸다.
“그런데 다음 기억은…”
그는 손목시계를 바라보며 말했다.
“10시 26분이었습니다.”
정훈의 눈썹이 조금 올라갔다.
“그 사이에 사고가 난 건가요?”
남자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잠시 침묵.
“기억이 없습니다.”
그는 계속 같은 말을 반복했다.
“12분이… 사라졌습니다.”
정훈은 사고 차량을 살펴보기 위해 차 쪽으로 걸어갔다.
차량 내부는 특별히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에어백이 터져 있었고 조수석에는 서류 가방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때 대시보드 위의 블랙박스가 눈에 들어왔다.
정훈은 메모리 카드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이 사건의 답은 아마도 그 사라진 12분 안에 있을 것 같았다.

블랙박스가 멈춘 순간
경찰서로 돌아온 정훈은 곧바로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했다.
컴퓨터 화면에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시간은 밤 10시 10분.
차량은 평범하게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라디오에서는 조용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고 운전자인 김민석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핸들을 잡고 있었다.
10시 11분.
신호등 앞에서 차량이 잠시 멈췄다.
10시 12분.
다시 출발했다.
10시 13분.
차량은 서부교차로 쪽으로 천천히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10시 14분.
영상이 갑자기 멈췄다.
정훈은 눈을 좁혔다.
화면이 정지된 상태로 몇 초 동안 유지되다가 갑자기 다음 장면으로 넘어갔다.
10시 26분.
차량이 이미 가로등을 들이받고 멈춰 있는 장면이었다.
정훈은 영상을 다시 돌려 보았다.
몇 번을 반복해도 결과는 같았다.
10시 14분에서 10시 26분.
그 사이의 12분이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정확히 12분만 잘라낸 것처럼.
정훈은 의자에 등을 기대며 생각했다.
단순한 블랙박스 오류일까.
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었다.
블랙박스뿐 아니라 차량 내부 GPS 기록도 같은 시간대가 비어 있었다.
게다가 김민석의 휴대폰 기록 역시 동일했다.
10시 14분부터 10시 26분까지 아무 기록도 존재하지 않았다.
통화 없음.
메시지 없음.
앱 실행 기록도 없었다.
그 시간 동안 그는 완전히 세상에서 지워진 것처럼 보였다.
그때 정훈의 시선이 지도 위에 멈췄다.
사고 지점 바로 옆 골목에는 오래된 건물 하나가 있었다.
건물 이름은 세림빌딩.
정훈은 잠시 멈칫했다.
그 건물은 5년 전 대형 실종 사건이 발생했던 장소였다.
당시 CCTV 영상에서도 정확히 12분이 사라져 있었던 사건이었다.
그 사건은 결국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정훈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혹시 이것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면.
그때 경찰서 전화가 울렸다.
당직 경찰이 전화를 받다가 정훈을 불렀다.
“형사님… 이상한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정훈이 고개를 들었다.
“무슨 신고?”
경찰이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사람이… 사라졌답니다.”
정훈은 물었다.
“언제?”
경찰이 말했다.
“오늘 밤입니다.”
잠깐 멈추더니 덧붙였다.
“사라진 시간은… 12분이라고 합니다.”
반복되는 사라진 시간
정훈은 곧바로 신고가 들어온 아파트로 향했다.
실종자는 대학생 박서연이었다.
그녀의 친구는 떨리는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했다.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어요.”
“몇 시였죠?”
“10시 조금 넘어서요.”
친구는 손을 떨며 말했다.
“갑자기 서연이가 말하다가 조용해졌어요.”
정훈이 물었다.
“끊긴 겁니까?”
“아니요… 그대로 연결되어 있었어요.”
친구는 숨을 삼켰다.
“그리고 12분 뒤에 다시 말했어요.”
정훈은 조용히 물었다.
“뭐라고 했습니까?”
친구는 그대로 따라 말했다.
“나… 방금 이상한 곳에 있었어.”
“어디였답니까?”
친구는 고개를 저었다.
“모른대요.”
잠시 침묵.
“기억이 안 난다고 했어요.”
정훈의 심장이 조금 빨라졌다.
“그 대신 계속 같은 말을 했어요.”
“무슨 말?”
친구가 말했다.
“12분이 없어.”
정훈은 그녀의 휴대폰 기록을 확인했다.
통화 기록은 정확히 10시 14분에서 10시 26분까지 비어 있었다.
또다시 12분이었다.
정훈의 머릿속에서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5년 전 세림빌딩 사건.
오늘 교통사고.
그리고 방금 실종 신고.
모든 사건에서 공통적으로 사라진 시간은 12분이었다.
정훈은 사고 차량 블랙박스 영상을 다시 확인했다.
그리고 그때 처음에는 보지 못했던 장면을 발견했다.
영상이 멈추기 직전, 도로 옆 골목에서 검은 밴 차량 하나가 잠깐 화면에 스쳤다.
정훈은 화면을 멈췄다.
밴 차량의 문에는 작은 글자가 적혀 있었다.
“Chronos Research.”
정훈의 손이 멈췄다.
크로노스.
시간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그 순간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낯선 번호였다.
정훈은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 너머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형사님.”
정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남자는 조용히 말했다.
“당신도 곧 경험하게 될 겁니다.”
정훈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뭘 말이지?”
잠시 침묵.
그리고 남자가 말했다.
“사라진 12분을.”
전화가 끊겼다.
정훈은 천천히 시계를 바라봤다.
지금 시간은
밤 10시 14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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