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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엘리베이터 13층: 멈춰버린 숫자, 존재하지 않는 층의 흔적, 마지막 승객
    서스펜스 스릴러 소설 2026. 4. 10. 05:41

    멈춰버린 숫자

    비가 잔잔하게 내리던 늦은 밤이었다. 도로 위에는 가로등 불빛이 번지듯 퍼져 있었고, 오래된 오피스텔 건물 외벽에는 빗물이 천천히 흘러내리고 있었다. 민재는 우산을 접으며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시계는 밤 11시 4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평소보다 훨씬 늦은 퇴근이었다.

    로비는 조용했다. 경비실 불만 희미하게 켜져 있었고, 복도 끝에 있는 엘리베이터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벽에 붙은 형광등이 간헐적으로 깜빡이며 낮은 전기 소리를 냈다.

    민재는 습관적으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잠시 후 위층에서 내려오는 기계음이 들렸다. 오래된 엘리베이터 특유의 철컥거리는 소리가 층마다 울렸다.

    띵.

    문이 열렸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묘하게 차가운 공기가 흘러나왔다. 여름도 아닌데 냉장고 문을 연 것처럼 서늘했다. 민재는 잠깐 인상을 찌푸렸지만 별생각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9층 버튼을 눌렀다.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2층.
    3층.
    4층.

    숫자가 하나씩 올라갔다.

    엘리베이터 안은 지나치게 조용했다. 평소에는 케이블이 움직이는 소리라도 들리는데, 오늘은 마치 건물 전체가 숨을 죽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였다.

    덜컹.

    갑자기 엘리베이터가 크게 흔들렸다.

    민재는 벽을 붙잡았다.

    그리고 표시창을 올려다봤다.

    숫자가 깜빡이고 있었다.

    13

    민재는 눈을 몇 번이나 깜빡였다.

    “뭐야…”

    이 건물은 13층이 없었다.

    처음 이사 왔을 때 관리사무소에서 들은 말이 기억났다. 서양에서는 13이라는 숫자를 불길하게 여겨 많은 건물에서 13층을 만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이 오피스텔도 12층 다음이 바로 14층이었다.

    하지만 지금 엘리베이터 표시창에는 분명히 13이라는 숫자가 떠 있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가 멈춰 있었다.

    잠시 후,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민재는 무의식적으로 한 발 뒤로 물러났다.

    문 밖은 복도가 아니었다.

    어둠이었다.

    콘크리트 바닥과 노출된 철근, 그리고 먼지가 쌓인 공사 현장 같은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희미한 전등 하나가 천장에서 흔들리며 깜빡이고 있었다.

    마치 존재하지 않는 층이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보였다.

    민재는 숨을 삼켰다.

    “이게 뭐야…”

    하지만 뒤돌아 엘리베이터 안을 보니 문 닫힘 버튼이 반응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조심스럽게 한 발을 밖으로 내디뎠다.

    그 순간.

    쾅.

    엘리베이터 문이 뒤에서 닫혔다.

    그리고 곧바로 위로 올라가는 기계음이 들렸다.

    민재는 혼자 남겨졌다.

    존재하지 않는 13층에.

     

    무서운 표정의 광대

    존재하지 않는 층의 흔적

    민재는 급히 엘리베이터 문을 두드렸다.

    “잠깐! 잠깐!”

    하지만 이미 엘리베이터는 멀어지고 있었다. 기계음이 천천히 위쪽으로 사라졌다.

    그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침착하자… 그냥 공사층 같은 거겠지.”

    하지만 건물 구조상 이런 층이 있을 리 없었다.

    민재는 휴대폰을 꺼냈다.

    화면에는 ‘서비스 없음’ 이라고 떠 있었다.

    신호가 전혀 잡히지 않았다.

    그는 주변을 둘러봤다.

    콘크리트 벽에는 먼지가 두껍게 쌓여 있었다. 발자국 하나 없었다. 마치 수십 년 동안 아무도 오지 않은 공간 같았다.

    조금 더 안쪽으로 걸어가자 벽에 낡은 안내판 하나가 붙어 있었다.

    13F – 관리구역

    민재는 고개를 갸웃했다.

    “관리구역?”

    이 건물에 이런 층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때 바닥에서 종이 조각이 눈에 들어왔다. 오래된 신문이었다. 종이는 누렇게 변해 있었고, 글씨 일부는 흐릿했다.

    민재는 그것을 주워 읽었다.

    “오피스텔 공사 현장에서 엘리베이터 추락 사고 발생.
    작업자 4명 사망.”

    날짜는 1998년 6월 13일이었다.

    민재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 순간.

    멀리서 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엘리베이터 도착 알림음이었다.

    민재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어둠 속에 있던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열리고 있었다.

    그 안에는 사람이 서 있었다.

    낡은 작업복을 입은 남자였다.

    얼굴은 그림자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그리고 낮게 말했다.

    “여긴… 네가 올 곳이 아닌데.”

    민재의 심장이 세게 뛰기 시작했다.

    “저… 저는 그냥 엘리베이터가…”

    그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엘리베이터 표시창이 보였기 때문이다.

    숫자는 여전히 13이었다.

    그리고 붉은 빛으로 천천히 깜빡이고 있었다.

     

    마지막 승객

    남자는 천천히 엘리베이터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의 발걸음이 콘크리트 바닥에 묵직하게 울렸다.

    민재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때 전등이 흔들리며 남자의 얼굴을 비췄다.

    민재는 숨을 멈췄다.

    남자의 얼굴은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었다.

    피가 마른 것처럼 검게 얼룩져 있었고, 피부 일부는 찢어진 듯 보였다. 눈동자는 희미하게 흐려져 있었다.

    마치 오래전에 죽은 사람처럼 보였다.

    남자가 중얼거렸다.

    “우린… 아직도 여기 있어.”

    “뭐라고요…?”

    “엘리베이터가… 우리를 두고 올라갔거든.”

    그 말이 끝나자 어둠 속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한 명.

    또 한 명.

    그리고 또 한 명.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씩 나타났다.

    민재는 공포에 질려 그들을 바라봤다.

    신문 기사 속 사망자 네 명.

    바로 그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엘리베이터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아직도 탈 수 있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민재는 공포에 질려 엘리베이터 안으로 뛰어들었다.

    문 닫힘 버튼을 미친 듯이 눌렀다.

    문이 천천히 닫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작업복 남자의 손이 문 사이로 들어왔다.

    손은 차갑고 창백했다.

    남자가 말했다.

    “한 자리… 비었네.”

    그 순간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민재는 바닥에 쓰러졌다.

    표시창 숫자가 빠르게 바뀌었다.

    13
    12
    11
    10
    9
    8
    7

    그리고 1층.

    띵.

    문이 열렸다.

    경비원이 놀란 얼굴로 안을 들여다봤다.

    “어? 사람 있었네요? 아까부터 엘리베이터가 계속 멈춰서 이상하다 했는데.”

    민재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이 건물에 13층 있나요?”

    경비원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없죠. 그런 층은.”

    민재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왔다.

    문이 닫히기 직전, 그는 무심코 안을 다시 바라봤다.

    엘리베이터 표시창에 숫자가 떠 있었다.

    13

    그리고 안쪽 구석에는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조용히 서 있었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천천히 고개를 돌려 민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날 이후 건물 주민들은 가끔 이상한 이야기를 했다.

    늦은 밤, 아무도 타지 않은 엘리베이터에서 들리는 안내음.

    그리고 천천히 울리는 기계 음성.

    “13층입니다.”

    하지만 그 건물에는 여전히 13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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